The Necessity of Redefining Firm Studies in the Era of Great Transformation: Reappraising Professor Kim Soohaeng’s Intellectual Legacy and the Potential Contribution of Marx
1 Gyeongsang National University
DOI: https://doi.org/10.17287/kbr.2026.30.2.1
Abstract
Commemorating the 10th anniversary of the late Professor Kim Soohaeng’s passing, this article reappraises his intellectual legacy of Marxist economics and suggests a direction for ‘firm studies’ essential in this ‘era of great transition.’ Kim laid the groundwork for the scientific analysis of capitalism in South Korea by completing the first full translation of Das Kapital, and disseminating theories on economic crises. Crucially, he introduced Marx not merely as a revolutionist, but as a ‘rigorous economist’ who meticulously analyzed contemporary economic realities, emphasizing the importance of realist research. Even in today’s landscape of artificial intelligence (AX), digitalization (DX), and green (GX) transitions, conventional economics continues to treat the firm as a mere ‘black box.’ By contrast, Marx’s Das Kapital serves as a comprehensive theory of the firm, covering internal production, value creation, and the mechanisms of circulation and competition. While Keynes and Schumpeter focused on the psychology or temperament of the entrepreneur, Marx identified how social relations, class dynamics, and competitive structures compel firms toward innovation and investment. Therefore, economics in this transitional era must move beyond abstract formulas, and re-focus on the firm as a practical agent. To achieve this, economics must break down disciplinary boundaries with management studies, and recover a
^1 Associate Professor, Department of Economics, Gyeongsang National University, ghgimm@gnu.ac.kr‘realist research method’ that critically analyzes the actual business world. Ultimately, the tradition of political economy left by Kim Soohaeng provides a powerful and enduring guide for the task of redefining firm studies amidst today’s global crises.
Ⅰ. 머리말
지난해 우리는, 우리나라에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창달에 학문적 생을 바친 김수행 교수의 10주기를 지냈다. 그는 2015년 여름 가족과 여행하던 중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났다. 이 글은 그의 사후 10년을 맞아 그의 생애와 업적을 돌아보고, 그가 오늘날 우리 경제에 제기되는 중요한 질문에 답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란 기업 연구의 의의와 방향에 관한 것이다. 나아가, 같은 질문을 다루는 데 있어, 김 교수가 자신의 학문적 생애 전부를 바쳐 국내에 소개하고자 했던 마르크스의 지적 유산이 갖는 의미를 재조명해보고자 한다.
Ⅱ. 김수행의 삶과 학문적 기여
1942년 일본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란 김수행은 1961년에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같은 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마쳤지만,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되는 등 고초를 겪다가 외환은행에 취직, 1972년부터는 같은 은행의 런던지점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다. 3년여의 해외지점 근무를 마치고, 그는 1975년부터 영국의 런던정경대(LSE)에서 본격적으로 학업에 뛰어든다. 나중에는 같은 런던이지만 비주류경제학 전통이 강했던 버크베크대(Birkbeck College)로 옮겨 1982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학위 제목은 “경제 위기의 이론들: 몇몇 일본과 유럽의 재정식들의 비판적 평가(Theories of Economic Crises: A Critical Appraisal of Some Japanese and European Reformulations)”였다. 훗날 그의 회상에 따르면, 원래 그가 생각했던 제목은 앞부분이 “경제 위기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이론(The Marxist Theory of Economic Crises)”이었다고 한다(Kim, 2007: 20). 물론 다분히 이것은 엄혹했던 당시 시대상에서 불필요한 문제에 휘말리지 않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박사학위논문 제목에서 ‘마르크스’라는 이름을 떼기는 했지만, 이후 그의 삶은 늘 마르크스와 함께였다. 1970년대 영국은 극심한 경제위기 속에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부흥의 중심지였다. 김수행은 한국인으로는 드물게 1970년대 내내 영국에 머물며 이를 경험하였고, 한국에서는 1980년대 노동운동 및 학생운동의 융성과 더불어 다소 뒤늦게 재현된 그 부흥을 ‘선각자’와 같은 위치에서 이끌기도 했다. 1980년대 말 한국에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은 현실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더불어 급격히 쇠퇴하는 듯도 했으나, 이후 나라 안팎에서 거듭된 경제위기 속에서 1990년대 말, 2000년대 말에 주기적으로 부흥기를 맞았다. 이 부흥의 중심에는 언제나 김수행이 있었다.
이렇게 그가 한결같이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부채의식과 책임감이었다. 그가 아무리 ‘불온한’ 경제학을 겁 없이 전공했다고는 해도 1970년대의 유신과 1980년의 광주를 그는 해외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바로 그런 폭압에 맞서 싸운 동료들과 국민들 덕분에 그는 마르크스를 전공했으면서도 서울대 교수가 될 수 있었던 데다가 마르크스 사상을 퍼뜨린다는 이유로는 별다른 고초를 겪지도 않았으니, 그가 1970-80년대 우리나라의 사회운동에 커다란 부채감을 느낀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생전에 김수행 교수는 ‘한국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대부’로 불리곤 했다. 하지만 이런 칭호는 그에겐 다소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구한말 경제학은 대체로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왔고, 이 과정은 일제 하에서 일본에서 유학한 소수의 지식인에 의해 주도되었다. 20세기 초반 일본의 경제학은 마르크스주의 성향이 강했으므로, 이런 성격이 한국에도 고스란히 이식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따라서 ‘대부’라는 칭호는 이를 테면 백남운(1894-1979) 같은 이에게 제격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1918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1925년 도쿄상과대학(현재의 히토쓰바시대학교)을 졸업한 그는 연희전문학교(현재의 연세대학교) 상과 교수를 지내면서 한국 경제학의 형성에 큰 역할을 했다. 특히 그는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에 입각해 한국사를 재해석하면서 당대 최고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로 이름을 날렸는데, 이런 그의 해석은 좌우는 물론 경제학 안팎을 넘나들며 널리 받아들여졌다. 다른 한편 전석담(1916-?) 같은 인물도 있었는데, 그 또한 일본 유학 후 귀국해 교직에 몸담으며 정력적인 활동을 이어갔다. 흥미로운 것은, 전석담은 그가 재직했던 경성상업전문대학이 훗날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으로 흡수되었을 뿐만 아니라 최영철, 허동과 함께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번역해 내놓았다는(1947년) 점에서,1 오늘날 김수행이 최초라고 여겨지는 두 부문(서울대 최초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교수, 최초의 자본론 완역2)에서 ‘타이틀’을 차지했었을 수도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렇게 20세기 전반기에 이루어진 마르크스주의 성향의 학문적 성과는 1950년대 이후 한반도 남쪽에서 철저히 말살되고 만다. 광복에 뒤이은 남북 간의 분단 상황에서 백남운과 『자본론』의 세 번역가가 월북을 택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웠을 수도 있지만, 잇따른 전쟁을 거치며 한반도 남쪽에서 조성된 강력한 반공 분위기는 마르크스는 물론 월북한 마르크스주의 계열 학자들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로써 김수행 교수가 영국에서 유학한 뒤 귀국한 1982년의 한국에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자체적 토대가 전무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그는 ‘한국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대부’라는 영광스러운 칭호는 얻었을지언정 유학 등을 통해 축적한 연구자로서의 높은 역량을 한껏 발휘하기보다는 번역자 또는 대중 저술가·교육자로 자신의 입지를 다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현실 앞에서 그는 회한의 감정을 내비치기도 하지만—“몇 년 동안 번역에 몰두하다 보니 시력이 근시와 원시의 혼합물로 변해버렸고 새로운 논문을 한 편도 쓰지 못하였다”(Kim, 1990a: VIII-IX)—남다르게 낙관적인 성격으로 그 현실을 적극적으로 끌어안기도 했다—“나는『자본론』의 완역을 가장 큰 연구업적으로 삼고 있다. 많은 학생들과 학자들이 그 어렵고 두꺼운 책을 짧은 시간에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환호작약한다”(Kim, 2007: 24).
물론 이것은 김수행 교수에게 고유한 학문적 기여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학술지『사회경제평론』에서 그의 정년퇴임(서울대)을 기념해 마련한 특집호 기고 논문 “나의 삶, 나의 학문”에서 그는, ▲『자본론』의 완역 및 그 이해 도모를 위한 추가적 저작활동과 더불어 ▲마르크스의 공황(crisis) 이론 연구, ▲경제 현실의 마르크스주의적 파악,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 모색, ▲한국사회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연구 등을 자신의 주요한 학문적 업적으로 꼽았다(Kim, 2007: 23-26). 특히 마르크스의 공황 이론 전공자로서 그는, 마르크스의 해당 이론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 자신만의 고유한 해석을 얹어 이론 자체의 수준을 고양시켰고(Kim, 1982; 1986; 1988; 2004; 2005b; 2006a; 2006b), 나아가 이를 한국경제(Kim, 1993a; 2000; Kim and Cho, 1999) 및 세계경제(Kim, 1995b; 1996a; 2005a; 2011; Kim and Lee, 2001; Kim, Chang and Chung, 2002)의 동향을 해석하는 데 적용함으로써, 특히 전자는 주기적으로 위기에 시달리는 우리 경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도 큰 공헌을 이뤘다.
그런데 김 교수가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소개했다는 것도 좀 더 입체적으로 평가할 여지가 있다. 흔히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경제의 모순적 성격, 그리고 그에 따른 필연적 몰락을 예언한 철학자이자 실천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경제학자이기도 했다. 도식적으로 말하면, 그가 평생 혁명적 조직가였다고는 할 수 있겠지만, 학문적으로는 젊은 시절 잠깐 철학자였을 뿐 1848년 유럽 혁명의 실패에 따라 영국으로 망명한 이후에는 줄곧 경제학자였고, 그의 대표작 『자본론』도 당대 경제학의 눈부신 성취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그런데도 마르크스는 국내에서 여전히 경제학자보다는 철학자나 혁명가로 더 알려져 있는 게 현실이다. 그리하여 그의 주저 『자본론』을 경제학적으로 독해 해하는 데 거부감을 갖는 마르크스주의 학자들도 적지 않다(Lee, 2004).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마르크스를 경제학자로서 소개한 것, 나아가 그의 경제학자로서의 면모를 다양한 연구를 통해 풍부하게 발전시킨 것 자체가 김 교수의 큰 업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Kim, 1984; 1988; 1990b; 1993b; 1994; 1995a; 1996b; 2004; 2006a; 2006b).
김수행 교수의 이런 면모는 그의『자본론』번역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를테면, 번역의 저본(底本)으로 영어판을 선택한 것이 그렇다.『자본론』의 비경제적 독해를 강조하는 이들은 애초『자본론』이 독일어로 씌었음을 들어 김 교수의 선택을 비판하곤 하지만, 외려 김 교수는 “『자본론』의 이론적 토대는 주로 영국의 고전파 경제학에 대한 비판이고,『자본론』의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든 예들(예증들)은 주로 영국사회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영어판이 번역에 훨씬 유리하다”(Kim, 1989: iii)는 입장을 고수했다.3) 김 교수가『자본론』의 수치 예들을 한국 독자들이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수정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평가할 수 있다. 특히 그는『자본론』에 등장하는 도량형과 화폐단위를 우리가 알기 쉽게 변환했는데, 이 또한 비경제적 독해론자들에게는 원전 텍스트 왜곡이라는 비판의 소지를 제공한 반면, 외려 그는 이 과정에서 마르크스 자신이 범한 몇 가지 오류들을 바로잡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Kim, 2007: 24-25).
돌이켜보면, 마르크스와 그의 후계자들이 발전시킨 사상은 한편으로는 자본주의 체제의 전복을 지향하기도 하지만, 그 경제학은 자본주의가 극단으로 치닫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경종을 울리면서 결과적으로는 체제의 ‘왼쪽날개’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극심한 반공 분위기 속에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발전이 지체되었고, 김수행 교수는 자신의 학문적 삶을 바쳐 이를 단숨에 만회하는 역할을 한 셈이다.
Ⅲ. 대전환의 시대, 기업 연구의 의의
3.1 이현재 교수의 시의적절한 문제제기
김수행 교수가 정년을 맞아 내놓은 “나의 삶, 나의 학문” 에세이에 딸린 ‘내가 쓴 글들의 목록’을 보면(Kim, 2007: 33), 가장 앞자리에 1968년에 서울대학교출판부에서 출간된『경제발전론』이 눈에 띈다. 당시 좌우를 막론하고 우리나라 경제학자에게 가장 중요한 화두는 경제발전(economic development)이었는데, 이 책은 당대 해외의 주요한 관련 논문들을 모아 번역한 편역서로서, 당시 약관의 김수행과 함께 이현재라는 이름이 편역자로 올라가 있다. 이현재는 1929년생으로 부산대를 거쳐 1961년에 서울대에 교수로 부임했다. 김수행의 입학 시기와 일치하는 것인데, 둘의 관계를 상세히 알 수 있는 자료는 없지만 두 사람이 함께 책을 낸 것으로 보면 나름대로는 각별한 사이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현재 교수는 1981년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으로 선출된 뒤 한국경제학회 회장(1983-1985년), 학술원 회장(1996-2000년)까지 지냈으니, 가히 해방 후 한국 경제학의 산 증인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4)
이 96세의 노 학자가 최근 “한국의 경제학과 경 경제학자: 반성과 제언”(Lee, 2025)이라는 묵직한 제목의 논문을 내놓아 화제가 되었다(Kim, 2025; Kang, 2025). 이 논문에서 그는 애덤 스미스 이래 최근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에 이르기까지 주요 경제학자들의 ‘학문하는 자세’를 살피면서, “그들이 처한 당시의 경제 상황에 대한 탐구에서 출발해서 인류의 미래를 내다보는 이론과 대안을 제시”했다는 공통점을 도출해 낸다. 동시에 그는 1950년대 이래 우리 경제학의 급속한 발전상을 일별하면서도 한국 경제학의 현황에 따끔한 일침을 놓기도 하였는데,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비판이 도드라져 보인다.
“경제의 생산 주체인 기업 부문에 관한 연구가 부실하다. 대다수 경제학도에게 기업 또는 기업 부문은 인풋을 넣으면 아웃풋이 나오는 가림막 속에 있는 상자와 같다. 기업의 본질이 무엇인지, 기업 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기업은 어떻게 가치를 창출하는지 등에 대해 올바로 이해하는 경제학자가 적다. 그러면서도 많은 수의 경제학자가 기업과 기업가를 구분하지 않고 몇몇 기업가의 일탈 행위를 근거로 해서 기업을 비난한다.” (Lee, 2025: 22)
이는 이 교수가 내놓은 한국 경제학에 대한 여섯 가지 비판 가운데 하나로서, 사실 이는 한국 경제학을 넘어 오늘날 주류로 자리잡고 있는 신고전파 경제학에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도 있다. 19세기 말 한계혁명 이후 근대경제학이 순수이론 중심으로 발달하는 경향 속에서 기업에 대한 연구는 구체적 역사나 각종 제도 등과 더불어 여러 응용분야 가운데 하나로 치부된 것이 사실이었고, 이때 응용분야의 연구란 그저 순수이론의 적용을 통해 비교적 쉽게 수행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5) 그 결과, 응용분야의 연구는 상대적으로 쇠퇴되거나 행해지더라도 순수이론 영역의 연구경향, 특히 방법론(methodology)에 종속되기 쉬웠는데, 흔히 코스(Ronald Coase)의 “기업의 본질(The Nature of the Firm)” 논문(Coase, 1937)을 통해 촉발된 것으로 여겨지는 경제학 내의 기업 연구는 정확히 그런 경향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Milonakis and Fine, 2009). 따라서 이런 분위기에서는 ‘기업의 본질은 무엇인지’, ‘기업 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기업은 어떻게 가치를 창출하는지’ 등이 교수가 기업에 대한 핵심 질문으로 꼽은 문제들이 충분히 다뤄지기를 기대하기란 어렵다고 봐야 할 것이다.6)
나아가 이 교수의 비판은 오늘날 현실에서 더 각별한 울림을 준다. 주지하듯이 지금은 대전환의 시대다. 오늘의 세계경제는 대전환의 와중에 있다. 디지털(DX)과 녹색(GX)의 이른바 ‘쌍둥이 전환(twin transition)’이 한동안 회자되나 싶더니 최근엔 인공지능 전환(AX)이 빠르게 덧붙여지고 있다. 이런 전환은 궁극적으로는 경제와 사회의 개별 주체들이 만들어내는 것이지만, 그것이 일단 거시적 차원에서 거대한 흐름을 형성하고 나면 그 어느 개별 주체도 그로부터 빠져나갈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전환이 그런 차원에까지 이르면, 개별 주체들은 전환 과정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에 열을 올리게 되며, 여기에서는 국가도 예외가 아니다. 선진 국가들을 중심으로 자국의 기업이나 개인이 전환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도록 지원하기 위한 거대한 국가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으며(Gimm, 2024),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벌어지는 강대국 간의 갈등은 기존 체제를 지탱했던 국제질서를 흔들기도 한다.
여기서 우리의 논의와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이런 전환기에는 현실이 이론을 압도한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합리성, 시장의 균형과 조화가 쉽게 상정되는 통상적인 경제학의 이론적 가르침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예전 같은 방식으로 적용될 수 없다. 이런 전환기에는 기존에 합의되어 우리에게 익숙한 이론적 프리즘으로 현실을 보고자 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 반대여야 한다. 전환기에는 현실 자체를 면밀히 관찰함으로써 우리의 이론을 쇄신하고 재정립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러한 관찰의 가장 중요한 대상이 바로 기업이다. 기업은 그 자체로 자본주의 경제의 핵심 주체일 뿐 아니라 현실의 인간 주체들이 상호작용하며 경제의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장, 특히 이러저러한 거대한 전환들이 실제로 벌어지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3.2 케인즈와 슘페터의 기업 이론과 김수행의 비판
아무리 현실이 이론을 압도하는 국면이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현재의 격변을 이해하고 미래를 가늠하는 데 도움을 줄 지적 자원이 아주 없지는 않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주류 경제학에서 기업 연구가 홀대 받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 대목에서 케인즈와 슘페터를 언급하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 둘은 경제학의 역사에서 누구보다도 경제에 대하여 실재적인 관심을 유지하면서 기업의 역할에 주의를 기울인 학자로 기억되고 있다. 공교롭게도 둘은 마르크스가 죽은 1883년에 태어난 동갑내기로서, 케인즈는 유효수요의 한 축으로서의 기업 투자의 중요성을, 슘페터는 경제발전의 핵심 동력으로서 기업의 혁신 및 창조적 파괴를 강조했다.
기업에 대한 슘페터와 케인즈의 논의를 간략히 일별해 보자. 먼저, 슘페터는 기본적으로 경제의 동학에, 특히 단순한 양적 ‘성장’이 아닌 질적 ‘발전’ 즉 ‘혁신’에 관심을 두면서, 기업가를 혁신과 경제발전을 일으키는 주체로 내세운다. 그에게 기업가는 단순히 이윤 동기에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고, 그런 의미에서 ‘자본가’와 구별되며,7 성공의 결과보다는 그 과정에서 희열을 느끼는 굉장히 특수한 기질의 사람이다. 요컨대 슘페터가 보는 경제발전이란 남다른 창의력과 선견지명을 가진 기업가가 은행의 신용을 이용하여 혁신을 수행하는 과정인 셈이다.
슘페터가 경제의 공급측에 주목했다면 케인즈는 수요측에 집중했다. 슘페터가 비교적 일반적인 차원에서 경제의 동학에 대한 이론을 수립하려고 했다면 케인즈는 ‘지금 여기’의 문제, 즉 1차대전 이후 영국에 닥친 불황의 타개에 더 관심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케인즈는 유효수요, 특히 이를 구성하는 기업의 투자수요에 주의를 집중시켰다. 기업의 투자는 투자수익에 대한 기업가의 미래 예상에 크게 좌우되는데, 투자의 비용 곧 이자율이 아무리 낮아 투자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더라도 기업가가 미래를 비관적으로 판단하면 투자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업의 투자수요, 나아가 경제 전체의 유효수요는 업계의 “통제되지도 않고 복종하지도 않는 심리”(Keynes, 2013: 317)에 의존한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김수행 교수가 마르크스 뿐 아니라 케인즈와 슘페터에 대해서도 상당한 연구를 진행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그가 1970년대 세계경제의 불황을 현실적 배경으로 하여 공황에 대한 이론적 연구를 박사논문 주제로 삼은 것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각하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Kim, 1982; 1983; 1984; 1988; 2006a; 2006b; 2009). 따라서 둘에 대한 김 교수의 비판을 따라가다 보면, 대전환기 기업 연구의 중요성이라는 이 논문의 주제와 관련해서 마르크스가 갖는 독특한 위상과 이론적 기여 지점이 한층 명확하게 드러날 것이다.
김 교수가 케인즈와 슘페터 모두에게 제기하는 비판의 골자는 두 사람이 기업보다는 기업가에 초점을 맞췄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기업가의 기질이나 심리에 대한 강조는 현실의 개별 기업가들의 성향이나 그것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 가족 내지 사회의 분위기 따위에 대한 연구를 자극하기도 했고(예: 기업가정신), 긍정적인 심리상태 유지를 위한 범사회적 분위기 조성의 중요성을 환기시키기도 했다(예: 케인즈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정기적으로 경제현황을 설명한 것). 그러나 김수행 교수에 따르면, 마르크스의 입장에서 이는 기업가의 기질과 심리를 둘러싼 사회경제적 구조의 의의를 경시한 것이다.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한 슘페터와 마찬가지로 마르크스도 자본주의의 동태적 측면을 높게 평가하였지만, 슘페터와 달리 마르크스는 “개별 자본가간의 경쟁이 혁신을 강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대항(예를 들면, 임금인상의 요구나 생산과정의 자율적 통제 요구)을 유효하게 처리는 방법이 혁신임을 강조한다.” 즉 마르크스는 “기업가의 심리적 동기”가 아니라 “사회관계로부터 혁신에 대한 압력을 도출”한다(Kim, 1988: 282). 또한 슘페터는 혁신을 위해 금융적 수단을 동원하는 기업가의 능력을 강조하기도 했는데, 이는 루돌프 힐퍼딩과 같은 그보다 한 세대 앞의 마르크스주의 학자들이 자금을 공급하는 은행의 역할과 영향력에 주목하고, 나아가 그것이 자본주의의 성격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를 연구한 것과 대비된다(Kim, 1995a). 케인즈에 대해서도 비슷한 비판이 가능하다. “장래의 전망이 비관적이면 기업가는 투자를 중단한다고 케인즈는 생각한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이윤추구와 경쟁 때문에 기업가는 ‘끊임없이’ 투자에 몰두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 [……] 따라서 마르크스의 경제변동론에 있어서는, 투자하려는 ‘의욕’보다는 투자할 수 있는 ‘능력’과 그 능력의 ‘한계’에 관한 연구가 진행된다”(Kim, 1988: 296).
Ⅳ. 기업 이론으로서의 자본론?
이렇게 보면, 케인즈와 슘페터의 논의는 오로지 이미 일어난 투자나 성공한 혁신에 대하여 사후적으로 적용해볼 수는 있겠지만, 그 이상으로 일반화하기는 어려워 보이기도 한다. 기업가의 기질이 얼마나 어떻게 남달라야 혁신이 성공하는지를 결정해주는 기준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근 세계경제의 대전환은 장기화되고 있는 극심한 경기침체에 대한 반응이기도 하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적어도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GFC) 이후 세계경제는 간헐적인 재정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 그리고 끊이지 않는 정치불안 속에서 침체일로에 있는 게 사실이다. 선진 경제권에서는 오직 미국만이 이따금씩 회복의 기미를 보이고 있는데, 그것은 어쩌면 인공지능이나 클라우드,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같은 새로운 기술들이 개발되고는 있지만 그 경제적 잠재력이 폭발하지는 못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주요국 정부들은 기업의 투자, 곧 유효수요 증대를 위해 엄청난 재정투입을 약속하는 한편(케인즈) 일론 머스크(Elon Musk)나 샘 올트먼(Sam Altman) 같은 혁신적 기업가들은 천문학적 금액의 투자를 유치하며 자사의 주가를 높이고는 있지만(슘페터), 실제로 그것이 경제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고 생산 성을 높이며 대전환을 추동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방면에서 의심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통상적으로 우리가 상정하는 것보다 더 근본적인 차원을 건드려주는 지적 자원이 필요함을 말해주는 것 같다. 그것은 당연히 자본주의 경제의 작동 메커니즘에 대한 것이어야 하겠지만, 동시에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자기반성적인 성격도 담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우리는 지금까지 그 어느 때보다도 카를 마르크스(1818-1883)의 사상으로부터 배울 점이 많다. 이현재 교수도 앞서 소개한 논문에서 마르크스를 잊지 않고 경제학의 선현 가운데 하나로 꼽았는데, 그 배경엔 오늘의 시대상에 대한 이러한 이해도 깔려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교수가 마르크스의 사상을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한 공산주의 실현”이라는 문구로 요약한 것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Lee, 2025: 11-12). 실제로 마르크스에게서 혁명적 실천가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지던 1848년 이전의 ‘청년기’를 제외하면, 그러니까 그의 ‘성숙기’의 저술 가운데서는 자본주의의 몰락이나 그것의 공산주의로의 대체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거의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외려 그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내적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게 사실이고, 그런 의미에서 그는 기본적으로 당대의 존 스튜어트 밀(J. S. Mill, 1806-1873)이나 빌헬름 로셔(W. Roscher, 1817-1894)와 비슷한 의미의 경제학자였다. 경제학자로서 그가 밀(영국)이나 로셔(독일) 같은 학자들과 다른 점은, 자본주의를 역사적으로 특수한 계급 적대(class antagonism)에 기반한 경제 체제로 보았다는 데 있다. 이 계급 적대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작동과 발달에 모순적 성격을 부여하는데,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작동과 발달의 각 국면에서 발생하는 온갖 모순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경제가 엄청난 생산성과 끈질긴 생명력을 발휘하는 비결을 밝히고자 노력했다는 점에서 경제학의 역사에서 독특한 지위를 차지한다. 요약하자면, 그는 모순이 누적되어 체제 전체를 취약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모순의 폭발에 따른 경제의 위기와 공황은 경제가 더 강건하게 재편되는 기회이기도 하다고 주장했다.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 대한 이와 같은 동학적(dynamic), 입체적 이해 때문에 마르크스는 체제가 위기에 처하거나 격변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그 위기와 격변의 본질을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에게서 특히 인기를 얻곤 했다. 1970년대 석유 위기, 1997년 동아시아 위기, 2007-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등의 시기는, 역설적으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부흥기이기도 했다.
마르크스가 오늘의 대전환기에 각별한 또 다른 이유는, 그 자신이 대전환의 시대를 몸소 살았다는 데서도 찾을 수 있다. 그가 살았던 시기에 자본주의는 상업적 단계에서 산업적 단계로의 이행을 거의 완성(산업혁명)하고 있었지만, 그 이행의 의미를 경제학은 아직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하는 상태였다. 이를테면, 상업 자본주의와 산업 자본주의에서 경제적 가치(value)의 본질에 대한 이해는 다를 수밖에 없었지만, 마르크스에 앞선 경제학자들은 그 차이를 불완전하게만 이해하였고, 그런 결함이 마르크스에게 이론적 개입의 여지와 필요성을 제공한 것이었다. 이렇게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자신의 이론을 기존 이론들을 비판해가면서 확립해 나갔는데, 그가 자신의 프로젝트를 줄곧 ‘경제학 비판’8)이라고 불렀던 것도 바로 그래서다. 그렇다면 마르크스는 어떻게 다른 경제학자들과는 차별화되는 이론적 고지를 점령할 수 있었는가?
이와 관련해서는 마르크스와 동시대를 살면서 그의 작업을 논평했던 저자를 참조해볼 수 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의 경제학 교수였던 카우프만(Illiarion Ignat’evich Kaufman)도 그 가운데 하나다. 그는 1872년에 출간한 한 논문에서 마르크스의 『자본론』9)을 두고 “지난 25년간 등장한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모든 체계적 연구들[……]을 뛰어넘는다”(Kaufman, 1872: 107)라고 논평하면서, 『자본론』의 장점을 그 실재적(realist) 태도에서 찾는다. 그에 따르면, 『자본론』에서 마르크스는 기존 경제학의 비판을 지향하지만 이를 위해 단순히 문헌의 검토와 비판에 만족하지 않고 “자본주의적 경제 질서에 대한 독자적 조사를 수행하고, 그 기초를 찾아낸 뒤 자신의 비판을 가한다. [……] 그는 자신이 수행하는 프로젝트에서 어떤 기준을 적용할지조차 고려하지 않는다. 그는 과학적 탐구라면 이 질문이 스스로 답을 제공할 것이라고 믿는다”(Kaufman, 1872: 103-104). 이런 실재적 연구의 결과 마르크스는, 선배 경제학자들과는 달리 경제에서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법칙은 없으며 “각 주요 역사적 시기는 그 시기가 지속되는 동안에만 삶을 지배하는 고유한 법칙을 지닌다”는 통찰을 얻을 수도 있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자본론』에서 마르크스가 실재적 연구를 집중한 대상이 다름아닌 기업10)이었다는 점이다. 이는 당시 산업혁명의 본거지인 맨체스터에서 실제로 면직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던 친구 엥겔스와 수시로 의견교환을 했던 덕분이기도 했지만, 마르크스 스스로도 기존의 경제학 문헌뿐 아니라 당대 경제와 사회의 실상을 전하는 신문이나 잡지의 기사들, 아동노동부터 노동시간, 불량 식료품 제조, 철도, 공중보건 등 당대의 각종 사회문제에 대한 의회보고서까지 면밀하고 집요하게 추적한 결과이기도 하다.11) 그리하여 『자본론』은 ‘기업의 본질은 무엇인지’, ‘기업 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기업은 어떻게 가치를 창출하는지’에 대한 논의들로 가득 차 있으며, 전체 세권을 하나의 종합적인 기업이론으로 이해해도 무방할 정도다.
먼저 1권은 생산 그 자체에 집중한다. 생산은 자본가가 원재료, 기계 등 생산의 물적 조건을 갖추고 노동자를 고용하는 데서 시작된다. 자본가는 기업 안에서는 노동자를 적절히 조직·통제하고 밖에서는 다른 업체들과 경쟁에 효과적으로 대처해야만 이윤을 얻을 수 있는데,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본가는 노동시간을 늘리고, 또 주어진 노동시간을 최대한 집약적으로 쓰기 위해 기술혁신에 열을 올릴 뿐 아니라 획득된 이윤을 생산에 끊임없이 재투자한다. 2권은 유통을 주제로 한다. 생산된 상품은 시장을 통해 팔리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러한 유통과정에 소요되는 시간과 자원을 얼마나 줄이느냐에 기업의 성과는 크게 좌우되므로, 마르크스는 그러한 절약 방식들을 세세하게 훑는다. 끝으로 3권은 크게 두 가지 주제를 다룬다. 첫째, 마르크스는 앞서의 생산과 유통 논의를 종합하는 한편, 기업들이 시장에서 서로 경쟁하면서 경제 전체의 균형이 끊임없이 형성되고 또 깨지는 메커니즘을 이론적으로 확립하고자 한다. 『자본론』 3권의 두 번 째 주제는 기업과 다른 자산소유계급과의 관계이다. 이상에서 본 기업의 활동은 사회의 유휴자산 및 자연자원을 활용하면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데, 12) 이 과정에서 기업은 이자나 지대의 형태로 해당 자산 또는 자원의 소유자에게 임대료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이 또한 기업 활동의 중요한 일부를 이룬다. 물론 이상의 기업 활동이 언제나 순조롭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기업 내부에서는 노동자의 저항, 기업 바깥에서는 기업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의 갈등, 타 기업과의 경쟁 및 경제 전체 차원에서의 조율 실패, 나아가 국가의 정책이나 국제정세의 변동 등이 기업의 활동을 제약한다.
Ⅴ. 결론을 대신하여: 경제학과 경영학의 경계 허물기
이상과 같이 마르크스는 무엇보다 기업을 대상으로 면밀하고도 종합적인 연구를 수행함으로써 경제학의 선학들과는 차별화되면서도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비판적인 이론적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특히 기업이 생산하는 가치의 본질이 무엇인지, 기업 생산성이 궁극적으로 어디에서 유래하며 그것이 경쟁 상황에서 어떻게 변화하는지, 기업이 대규모화하고 그 과정에서 복잡한 금융관계에 연루되면서 가치의 생산과 분배에 어떤 변경이 가해지는지 등에 대한 마르크스의 논의는 당시 기준으로 독보적이었다. 마르크스의 이론이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노동자이자 정치경제학자 해리 브레이버맨(Harry Braverman)은 노동과 독점자본(Labor and Monopoly Capital: The Degradation of Work in the Twentieth Century)(1974)이라는 기념비적인 저작을 통해 훗날 ‘노동과정(labor process)론’이라고 불리게 될 연구의제를 내놓았고, 이탈리아의 ‘노동자주의(operaismo)’ 집단은 공장-노동에 대한 마르크스의 논의를 확장해 자본주의 사회 전체를 가치 생산에 봉사하는 단위로 보면서 이론의 정치적 함의를 급진화하였으며, 페미니스트들은 비생산적 활동으로 치부되던 가사노동이 사실은 생산에 간접적으로 기여하지만 자본이 ‘무상으로’ 활용하는 노동임을 설득력 있게 밝혀내기도 했다.
그런데 마르크스 이론의 세세한 내용도 중요하지만, 오늘날과 같은 대전환의 시기에는 그의 연구방법에 새삼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오늘날 경제학에서 지배적인 조류에 타당성을 부여해 왔던 19-20세기의 이념적, 현실적 토대가 최근 부쩍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경제학은 자신을 반성하고 재구성에 나서야 하는 상황을 다시금 맞닥뜨리고 있는 것 같다. 이 논문에서는 그 과정에서 기업에 대한 연구가 중요한 돌파구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하였다.
앞서 20세기 경제학의 발달과정에서 기업 연구가 주변화된 정황을 지적했는데, 그렇게 밀려난 기업이 사회학, 인류학, 지리학 등 여타 사회과학,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경영학에서 핵심 주제로 자리해오고 있다는 것은 종종 간과되지만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이런 분야에서 기업에 대한 연구는—마르크스의 연구에 대한 카우프만의 논평을 떠올리라—많은 경우에 실재적이고 비판적인 성격을 띠곤 한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한 연구자는 근래 영국에서 비즈니스 스쿨이 경제에 대한 비주류적이고 비판적인 연구의 메카로 자리잡고 있다고 관찰하면서, 그 원인으로 첫째, 학생들이 학계보다는 업계 진출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굳이 학제(discipline)에 얽매일 필요가 덜 하고 실제로 다학제적 태도가 일자리를 구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여겨진다는 점, 둘째, 이론 내적 정합성 구축 같은 사변적 이슈에 얽매이기보다는 현실(의 비즈니스) 세계를 직접 다룬다는 점, 셋째, 제도적으로 보면 비즈니스 스쿨들을 중심으로 이른바 ‘비판적 경영학(Critical Management Studies)’이 강력하게 발달되어 있다는 점 등을 꼽았다(Fine, 2024: 200-201). 비판적 경영학(Alvesson and Willmott, 1992)은 비록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한 분야이지만 1980년대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부상, 당대 유행하던 포스트-구조주의의에 입각해 노동과 조직에 대한 경영학의 주류적 사고방식과 마르크스주의적 접근 모두를 거부하면서 그 나름의 비판적 입지를 다져왔다. 프레더릭 해리 피츠에 따르면, 이는 마르크스주의자와 주류 경영학자 모두의 잘못된 통념에 대한 귀중한 교정장치 역할을 했으나, 동시에 가치의 생산과 교환 메커니즘이나 그 안에서의 계급에 대한 분석에는 소홀했다는 문제도 함께 배양해 왔다. 피츠는 그리하여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이라는 문제의식 속에서 비판적 경영학에 숨을 불어넣고자 한다(Pitts, 2022).
이렇게 보면, 그 재구성의 과정에서 경제학은 기업 연구를 매개로 경영학과 깊숙하게 접속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며, 어쩌면 둘 간의 경계 자체를 허물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 과정에서 마르크스, 그리고 국내에서는 김수행 교수와 같은 이들의 학문적 유산을 돌아보고 재평가하는 것이 유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궁극적으로 재구성될 경제학은 단순한 경제학이 아니라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이라고 불리는 게 더 타당할 것이다.
1. 개요
지금 자본주의 경제는 대전환을 맞고 있다. 이 전환은 인공지능(AX)·디지털(DX) 및 친환경(GX)이라는 양 축을 중심으로 한 생산방식과 공급망의 근본적 변화를 포함할 뿐만 아니라, 최근 들어서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새로운 관세정책과 경제 및 군사 영역에서의 자국우선주의와도 맞물려지면서 글로벌 정치·경제질서의 근본적 재편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줄잡아 지난 100여년 동안 우리가 사는 경제와 사회를 이해하는 규범이 되었던 이론적 자원들의 실효성이 시험에 부쳐지고 있다. 경제학을 포함한 현대 사회과학이 입각해 있는 대전제들이 무너지는 것 같아서다. 지금 우리는 사회과학 자체를 재구성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기존 이론이 현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어렵다면, 현실을 면밀히 관찰함으로써 기존 이론을 쇄신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이런 질문을 다루는 과정에서 칼 마르크스의 사상,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연구태도를 돌아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마르크스는 19세기 중반 자본주의가 본격화하던 시기를 살며, 당시로서는 새로운 경제·사회질서인 자본주의의 본질과 작동원리를 실증적으로 탐구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의 이런 태도는 그의 주저 『자본론』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여기서 그는 기존 통념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기업을 연구하고 기업을 중심으로 경제의 변화를 파악하고자 했다.
2. 학습 목표
본 학습의 가장 기본적인 목표는 사회과학 전반에서 하나의 ‘고전’으로 자리잡고 있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구조와 핵심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론』은 고전이 으레 그렇듯이 많은 잘못된 통념과 오해로 둘러싸여 있는데, 따라서 본 학습은 그런 통념을 내려놓는 데서 시작된다. 실제로 『자본론』은 자본주의 체제의 소멸을 다루기보다는 그 작동 메커니즘에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 출간 이후 150년이 훌쩍 지났지만, 이 책은 여전히 오늘날의 경제의 본질적 성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들을 던져준다. 여기서 학습자들은 마르크스가 내세우는 개념들을 통해 오늘날 경제학 및 경영학에서 통용되는 대응 개념들을 재검토하고 반성하는 기회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 본 학습에서는 『자본론』의 세세한 내용과 더불어 그 저자가 경제를 탐구하는 독특한 방법을 탐구하고 이해하는 것을 또 하나의 핵심 목표 로 삼는다. 여기서 우리는, 마르크스가 기업을 자본주의 경제의 핵심 주체로 삼았다는 것, 그리고 기업의 작동을 둘러싼 내적·외적 사정들을 다각적으로 살피고 그 결과들을 자본주의 경제의 본질을 서술하는 재료로 삼았다는 데 주목한다. 이는 오늘날 경제의 변화를 이해하는 실마리도 기업 연구로부터 발견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세 번째로, 마르크스의『자본론』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등 마르크스의 경제학을 국내에 전파하는 데 학문적 일생을 바친 김수행 교수의 업적을 돌아보는 것도 본 학습의 주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다. 김 교수는 마르크스의 경제이론을 현대적인 맥락에서 재해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의 ‘기업 이론가’로서의 면모에 주목한 흔치 않은 학자이기도 하다. 따라서 김 교수의 업적을 돌아봄으로써 학습자는 기업 이론가로서 마르크스의 특성, 특히 다른 유사한 이론가들과 구별되는 지점들을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일반적으로는 마르크스의 이론을 오늘날 한국이라는 맥락에 어떻게 적용시킬 것인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본 학습을 통해 학습자들은 경영학과 경제학이 어떻게 맞물리면서 오늘날의 경제를 이해하는 데 유용한 지식을 생산할 수 있을지에 대한 사고를 진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
3. 타겟 독자 및 강의
본 학습은 직접적으로는 기업을, 그러나 그를 통해 궁극적으로 오늘날 경제의 변화 양상을 이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오늘날 기업 연구는 경영학뿐 아니라 경제학, 사회학, 인류학, 지리학 등 사회과학 전반에서 행해지고 있는 만큼, 본 학습은 초(超)학제적 성격을 띤다.
4. 사례 질문(Case Questions): 수업 중 논의를 촉진할 수 있는 핵심 질문
(1) 가치, 가격, 노동, 자본, 이윤 등 경제의 기본 개념들을 규정하는 데 있어서 마르크스와 당대의 다른 경제학(political economy) 이론가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보시오.
(2) 경제를 다루는 마르크스의 방법은 사회과학에서 실증주의라고 하는 조류와 비슷해 보이기도 하는데, 실증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의 언급 등을 참조하면서 둘이 어떻게 구별되는지를 서술하고, 『자본론』에서 그런 차이가 드러난 예를 찾아보시오.
(3) 마르크스, 슘페터, 케인스의 기업에 대한 논의를 비교하면서, 각각이 오늘의 현실을 이해하는 데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를 논하시오.
(4) 가치의 개념은 불변인가? 오늘날 기업은 무엇을 생산하는가?
Table 1 『자본론』각 권의 기업이론적 해석
| 권 | 주제 | 세부 내용 | 핵심 질문 |
|---|---|---|---|
| 1권 | ‧ 기업의 생산: 노동과 기술혁신 ‧ 자본의 축적과 투자 |
‧ 노동력의 구매와 사용 ‧ 협업·분업·공장조직 ‧ 노동시간 연장과 생산성 향상 ‧ 기계 도입과 그 결과 ‧ 자본의 축적, 집적, 집중 |
기업은 어떻게 노동과 기술을 조직해 잉여를 생산하는가? |
| 2권 | ‧ 개별 자본의 순환, 회전, 재생산 ‧ 경제의 거시적 재생산 |
‧ 화폐–생산–상품자본 순환 ‧ 자본 요소의 회전: 기간과 속도 ‧ 고정자본과 유동자본 ‧ 부문 간 재생산 연관 |
자본은 어떻게 순환·회수·재생산되는가? |
| 3권 | ‧ 자본의 부문간 이동 통한 평균이윤 형성 ‧ 자본의 기능별 분화 |
‧ 경쟁과 평균이윤율 ‧ 자본주의 경제의 위기와 공황 ‧ 상업자본과 유통전문화 ‧ 신용과 이자, 금융 팽창 ‧ 생산에서 분배로 |
기업은 경쟁을 통해 어떻게 이윤을 실현하고, 왜 위기에 직면하는가? |
